여행이란 반드시 멀리 가양 하는 건 아니다. 차로 한두 시간이면 닿는 거리에도, 낯설고 따뜻한 풍경은 충분히 존재한다. 세종은 ‘새로운 도시’로 잘 알려져 있지만, 조금만 국도를 타고 벗어나면 오래된 시장과 시골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 여행은 계획도, 예약도 없이 단 하루 동안 국도만 따라 떠난 전통시장 여행이다. 조치원, 공주, 논산—세 곳의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 음식, 분위기, 그리고 그 안에 녹아 있는 이야기들은 내가 평소 잊고 지냈던 감정을 되살려주었다.
1. 조치원 전통시장 – 시장의 아침은 따뜻하다
아침 9시, 세종시 고운동을 출발해 1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15분 달리면 조치원 전통시장에 도착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마자 콩나물국밥 끓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시장은 이미 깨어 있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짐 수레를 끌며 채소와 생선을 사고 있었다. 어느 순대국밥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가게 안은 플라스틱 의자와 허름한 테이블뿐이었지만, 가득한 김과 소리로 따뜻한 기운이 넘쳐났다.
“밥 먼저 드세요. 고추장 넣어서 비벼도 맛나요.” 아주머니의 말에 따라 밥을 반쯤 비빈 뒤, 국을 한 숟갈 떠봤다. 진하고 구수한 맛. 시장에서 먹는 국밥은 기계적인 프랜차이즈 식사와는 전혀 다르다. 정성과 분위기가 재료가 되어버린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순대, 어묵, 마른 반찬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었다. 시장은 그냥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활의 박물관 같았다.
2. 공주 산성시장 – 성곽 아래 오래된 장터
조치원에서 다시 차를 타고 4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면, 30분 정도 후에 공주에 닿는다. 공산성 바로 아래에 자리 잡은 산성시장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시장 입구에는 전통 한과 가게, 엿 가게, 국수집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3대째 칼국수집’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고, 나는 그곳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국수를 삶는 냄비에서는 면이 팔팔 끓고 있었고, 옆에서는 수타면을 뽑고 있었다. 국물은 멸치 육수에 들깨가루가 곁들여졌고, 면은 탱탱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식당 벽에는 1980년대 흑백 사진이 몇 장 걸려 있었다. “할머니 때부터 여기서 장사했어요. 예전엔 성 밑에까지 포장마차가 줄줄이 있었죠.”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시장은 단순한 판매처가 아니라 세월을 담는 그릇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식사를 마친 뒤 공산성 성곽길을 따라 잠시 걸었다. 시장에서 배를 채우고, 성곽 위에서 시간을 음미하는 이 여정은 공주에서만 가능한 조합이었다.
3. 논산 화지중앙시장 – 군것질의 천국
공주에서 23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40분쯤 이동하면 논산이다. 논산 시내 중심에 위치한 화지중앙시장은 의외로 현대적인 외형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 안은 여전히 전통적인 감성이 살아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색색의 튀김과 떡볶이. 분식 노점 앞에는 중고등학생들과 어르신들이 뒤섞여 앉아 간식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김말이와 오징어튀김, 찹쌀도넛, 그리고 수박주스를 하나씩 사 먹었다. 종이컵에 담긴 수박주스는 생각보다 진했고, 한 모금 마시자마자 몸이 식었다. “날 더울 땐 이게 최고죠. 우리 집 수박이에요.” 아주머니는 수박이 실려온 카트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곳에선 모든 것이 지역에서 나왔고, 또 지역으로 돌아간다.
시장 깊숙한 곳에는 낡은 이발소와 옛날 문구점도 있었다. 아무도 들어가지 않을 법한 그곳에서 나는 어릴 적 향수를 느꼈다. 국도 여행이 주는 감성은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람을 조용히 자기 안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4. 여행을 마치며 – 돌아오는 국도 위의 평온
논산에서 다시 세종으로 돌아오는 길은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도로에는 차량이 거의 없었고, 라디오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조치원에서 산 묵은지와 꽈배기가 옆자리에 있었고, 차창 밖으로는 논밭과 들판이 이어졌다. 나는 이날 하루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먹었고, 그보다 더 많은 감정을 느꼈다. 속도도 없고, 스릴도 없는 여행이지만, 이 느린 길 위에서 나는 나를 가장 많이 만났는지도 모른다.
5. 코스 요약 및 여행 정보
- 이동 거리: 약 95km, 총 주행 시간 2.5시간 내외
- 이동 수단: 자가용
- 코스 요약: 세종시 → 조치원 전통시장 → 공주 산성시장 → 논산 화지중앙시장 → 세종시
- 식사 추천: 조치원 순대국, 공주 칼국수, 논산 분식 + 과일주스
- 주의사항: 각 시장의 휴무일, 주차장 위치 미리 확인 필요